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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의힘

우리 할머니

회식 마치고 집에돌아온 날, 아빠한테 전화가 왔다.
막걸리를 자의반 강권반으로 1병을 마시고 얼큰하게 취해있었는데 정신이 확 드는 통화 내용이였다.
할머니가 오늘 상태가 나빠져서 병원으로 옮겨서 하루종일 옆에 있다가 상태가 좀 좋아지는 것 같아서 집에 와서 속상해서 술한잔 했다는 이야기였다.  
이 때만 해도 할머니가 이렇게 바로 가실 줄은 상상도 못했다. 정말.
  회식 때의 업되있던 기분이 한 순간에 가라앉고,
지난주 친구 할머니 장례식장 다녀온 생각도 나면서  눈물이 났다.   평소에도 어쩌다 가끔 할머니 생각이 나면 눈물이 나곤 했으니까.  
  새벽에 6시 30분 즈음에 아빠 전화가 왔다. 할머니 돌아가셨다고. 빨리 오라고.
  슬프다는 느낌전에  회사 생각이 먼저 났다.  책상도 개판인 상태로 나오고, 마무리 짓지 못한 부분들이 먼저 꺽정스러웠다.
이 부분에서 내가 얼마나 과도한 책임감에 메여있는지 한번더 깨달았다.   노동을 제공하는 댓가로 매달 생활비를 주는 귀한 곳이지만, 그렇다고해도 나의 가족보다 귀할 순 없는데....

그렇게 슬픈지 뭔지 모를 감정을 가지고 장례식장으로 동생과 함께 이동했다.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확 실감이 나면서 눈물이 핑돌더라.

상복을 갈아입고, 조문객 맞을 준비를 하며, 차례차례 도착하는 친척들과 인사를 나눴다.
우리의 표정은 슬펐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친척들을 봐서 반가운 마음도 많이 들었다.  
아마 할머니가 17년을 있어줘서 이별을 어느 정도 예감하고 준비할 시간이 꽤 넉넉했기 때문이겠지.
사고사나 투병기간이 짧았다면 이렇게 비교적 웃으면서 장례식을 치루지는 못했을거다.

할머니가 처음 뇌경색 판정받고 쓰러졌을 때는 진짜 많이 울었던 것 같다.  담임 선생이랑 상담할 때 할머니 잘 계시냐는 질문에  울면서 아프시다는 이야기했던것도 생각이 나네.
할머니가 갑자기 다리에 마비가 와서 2층인 우리집까지 못올라오고 , 우리 이름 부르면서 소리 질렀는데 우리는 못들었던 일.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병원에서 검사를 받기로 한 날 아침, 우리 식구 아침밥 차려줬던 일이 생각난다.   할머니는 이미 그 때부터 말을 하지 못했다.   나도 정확히 뭔지는 몰라도 심각함을 느꼈던 것 같다.  그렇게 슬픈 마음으로 할머니가 차려준 마지막 밥을 먹었다. 시래기 된장국이였나.  

지난 17년 동안 한달에 두번씩 할머니를 보러 요양원을 왔다갔다 했었다.  
때로는 귀찮음을 감수하는 마음으로 갈 때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도 꾸준히 왔다갔다 한 내 자신에게 고맙다.  

코로나 이후로는 간식만 드리러 왔다갔다 했었다.
그렇게 코로나가 어느 정도 일단락 된 1년 후 할머니를 보니  표정이며 몸 상태며 많이 안좋아져있었다.  
그래도 그전에 병문안 가면 우리도 알아보고, 아리랑도 곧잘 불렀었는데...  
더욱더 앙상해지고 우리를 봐도 보는둥 마는둥한 얼굴이였다.  
정말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할머니를 보며 이젠 그만 할머니가 편하게 쉬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커졌다....    

그런 바람이 닿은걸까.  할머니가 정말 떠났다.
장례 둘째날 , 할머니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았다. 수의를 입는 과정을 온 가족들이 지켜봤다.  
차갑디 차가운 할머니의 얼굴과 몸을 만지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할머니의 표정은 그저 자는 것처럼 편하게만 보였다. 아니 자는 사람의 표정보다도 더 평온하게 보였다.  미간찌푸림도 없이  더없이 편한 얼굴이였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눈앞에는 코로나 항원 테스트기가 있다.  
요양원 방문 할 때 쓰려고 넉넉하게 샀었는데  이제 쓸일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쓴 웃음만 짓게 된다.

장례식 첫 날부터 날이 흐리더니  둘째날은 눈이 하루종일 내렸었다. 마지막 셋째날은 발인식 순간까지만 눈이 오고  , 모든 절차를 마치고 돌아갈 때는 해가 그렇게 쨍하게 뜰 수가 없었다.

마지막에 봉안함에 넣을 가족사진을 찍으려고 단체사진을 찍었는데 옆에있던 사촌동생이 할머니가 이제 너네 잘 살으라고 날씨가 밝아진것 같다는 말을 했다.  
그 말에 동의를 하면서 또 한번 할머니에게 고마워졌다.  

할머니 건강할 때 이후로 이렇게 온 식구가 2박3일을 붙어있던 적이 없었는데 할머니 덕에 모여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오해도 풀고 가족간의 정을 많이 느낄 수 있는 시간이였다.  

애자 씨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해.  편하게 있다가 우리 또 만나요.